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오 켐페스 (문단 편집) === 국가대표 === 프로 데뷔 첫 해인 1973년부터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]]에 선발되어 활약했다.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 서독 월드컵]]에 출전했으나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고 [[요한 크루이프]]가 이끄는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]]에게 무릎을 꿇었다. [[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]][* 마지막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] 당시 아르헨티나는 해외파 선수들 중 유일하게 켐페스만 엔트리에 포함시켰다. 켐페스는 1976-77, 1977-78 시즌 [[라리가]] 득점왕이었기에 가장 큰 기대를 받았고 [[호르헤 라파엘 비델라]]의 협박까지 더해져 엄청난 부담을 짊어졌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E2mgGm9wfiE)]}}}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9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FFFFFF 15%, #ABDDED 15%, #ABDDED 29%, #FFFFFF 29%, #FFFFFF 43%, #ABDDED 43%, #ABDDED 57%, #FFFFFF 57%, #FFFFFF 71%, #ABDDED 71%, #ABDDED 85%, #FFFFFF 85%)" {{{#000000,#e5e5e5 '''켐페스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활약상'''}}}}}} || 아르헨티나는 1차 조별리그에서 2승 1패 조 2위로 2차 조별리그에 진출했고 켐페스 본인도 무득점이었다. 그러나 2차 조별리그[* 74월드컵과 78월드컵 8강은 토너먼트가 아닌 8강 조별리그(2차 조별)였으며, 4강전 없이 8강 각 조 1위만 결승행, 8강 각 조 2위는 탈락하여 3,4위전으로 갔다.]에서는 켐페스가 브라질전 페루전에서 각각 2골씩 기록하며 팀을 캐리했고 아르헨티나도 [[페루 축구 국가대표팀|페루]]를 6-0으로 대파하는 등 [[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|브라질]]을 득실차에서 앞서며 조 1위로 결승에 진출했다.[* 아르헨티나 2승 1무 승점 5점 8득점 0실점 득실차 +8, 브라질 2승 1무 승점 5점 6득점 1실점 득실차 +5.][* 다만 이때 페루와 아르헨티나 사이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.]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pGdPWT87CfQ)]}}}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마리오 켐페스 네덜란드전 골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; padding: 9px 10px; background-image: linear-gradient(to right, #FFFFFF 15%, #ABDDED 15%, #ABDDED 29%, #FFFFFF 29%, #FFFFFF 43%, #ABDDED 43%, #ABDDED 57%, #FFFFFF 57%, #FFFFFF 71%, #ABDDED 71%, #ABDDED 85%, #FFFFFF 85%)" {{{#000000,#e5e5e5 '''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득점 후 기뻐하는 켐페스'''}}}}}} || 계속해서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]]와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과 결승골, 2골을 때려 넣으며 3-1 승리를 이끌었고 아르헨티나는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. 그리고 켐페스는 6골로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골든볼을 수상하였다. 이로써 그에게는 [[투우사]], [[야생마]]라는 별명이 붙었다.[* 이 결승전 또한 지나치게 아르헨티나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 때문에 지금도 논란이 있다. 그러나 대회 자체의 논란과는 별개로 켐페스의 활약만큼은 인정받는다.] [[1982 FIFA 월드컵 스페인|1982 스페인 월드컵]][* 첫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]에는 [[디에고 마라도나]]와 같이 엔트리에 포함되어 아르헨티나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되었지만 막상 월드컵 개최지인 [[스페인]]에 도착하자 국내에서 거짓선전했던 것과는 달리 [[포클랜드 전쟁]]에서 아르헨티나가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. 그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축구로 그것을 극복해보고자 했지만 결국 1차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한수 아래의 [[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|벨기에]]에게 패했다. 그 후 [[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|헝가리]]전과 [[엘살바도르 축구 국가대표팀|엘살바도르]]전에서는 [[디펜딩 챔피언]]다운 위용을 뽐내고 2승 1패 조 2위로 2차 조별리그[* 82월드컵은 2차 조별리그가 12강 조별리그였으며, 각 조에 3팀씩 편성되어 12강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로 진출했다.]에 진출했다. 하지만 2차 조별리그에서 마라도나가 울분을 못참고 브라질 선수를 발로 차서 퇴장당하면서 숫적열세에 시달렸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아르헨티나는 대폭망... 결국 2연패를 당하며 조 3위로 탈락했다.[* 82월드컵 11위] 이후 켐페스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